“일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혹은 일을 쉬는 중이든 대부분의 시간을 ‘일(work)’이라는 단어와 함께 보냅니다. 그래서 일의 의미를 묻는 건 결국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를 묻는 일이기도 합니다.

일하고 싶은데 일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일은 어떤 의미가 될까요?
이건 단순히 “백수라 힘들다”가 아니라, 존재감·자존감·소속감·미래에 대한 불안이 한꺼번에 얽힌 질문입니다. 이때 ‘일’은 월급이 찍히는 활동을 넘어, 나만 빠져 있는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출근하고, 회의하고, 퇴근 후 피곤하다 말하는데,

“그래도 일할 수 있는 게 부럽다.”
“나는 왜 저 자리에 있지 못할까.”하는 생각을 하곤 하지요.

일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이유는 건강상의 이유, 가족 돌봄, 쉬고 싶어서, 재취업 준비 등 각자 다르지만,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은 느낌”, “사회에서 살짝 밀려난 느낌”이 듭니다.

이 시기에 일은 소속감의 다른 이름이 됩니다. 회사, 팀, 프로젝트, 가게 같은 그룹 안에 속해 있을 때 우리는 회의를 하고, 메신저를 주고받고, 결과물을 내면서 “나는 이 안에 있다”는 감각을 얻습니다. 반대로 일하지 못하면 그 그룹의 바깥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마음 속에서 “나도 어딘가에 속하고 싶다”는 갈망이 생깁니다.

또 일은 자존감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합니다. “무슨 일 하세요?”, “어디 다니세요?”라는 자연스러운 질문이, 일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바늘처럼 찌르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은 쉬고 있어요”, “이직 준비 중이에요”라고 말하면서도,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능력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를 걱정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일의 유무가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잣대처럼 느껴지고, 일이 끊기면 “지금의 나는 가치가 떨어진 사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SNS와 모임 속에서 남들의 승진, 이직, 창업 소식을 듣다 보면 비교와 불안은 더 커집니다.

이 공백기에 평소에는 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지?”,
“어떤 하루를 보내야 ‘잘 살았다’고 느낄까?”

힘든 시기지만, 동시에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일’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들도 사실은 충분히 일에 가깝습니다. 가족을 돌보고, 몸을 회복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작은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하루 한 시간이라도 공부하고 정리하는 것들. 월급이 찍히지 않을 뿐, 분명 에너지와 시간을 들여 꾸준히 하는 ‘보이지 않는 형태의 일’입니다.

그래서 공백기에도 이렇게 말해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마음을 회복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를 위해 공부하고 방향을 잡는 일을 하고 있어요.”

조금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이걸 인정하는 순간, 공백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시간’이 아니라, 다음 일을 위해 일을 해나가는 시간으로 조금 달리 보일 겁니다.
물론 불안과 답답함이 당장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괜찮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고 정확한 것은
지금 당신이 일을 하든, 하지 못하든, 사람으로서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믿기 어려운 날에도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멈춰 선 게 아니라, 다음 일을 위해 뛰고 있는 사람이다.”

언젠가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지금의 시간이 결코 쓸모없는 공백이 아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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