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가마쿠라 시대 말기, 가마쿠라에서는 도쿠소(得宗)(호조(北条) 일문의 카토쿠(家督))인 호조 다카토키(北条高時)가 위세를 떨치고 있던 무렵, 교토에서는 고다이고(後醍醐) 천황이 즉위했다. 고다이고는 적극적으로 정무에 전념하는 한편, 오랜 동안 황실의 비원(悲願)이었던 가마쿠라 막부 타도를 계획한다. 근신(近臣) 히노 스케토모(日野資朝)・도시모토(俊基)의 무리에게 막부 타도 세력의 규합을 명하지만, 쇼추(正中) 원년(1324) 9월에 계획은 발각되어, 그 관련자는 주살(誅殺) 또는 체포되고 만다(쇼추의 변(変)). 그로부터 7년이 흐른다. 고다이고는 다시 막부 타도 계획을 진행하지만, 또 다시 막부가 알게 된다. 히노 스케토모는 사도(佐渡)에서, 도시모토는 가마쿠라에서 각각 처형되고, 그 책임 추궁의 손길은 궁중에까지 미쳤으므로, 겐코(元弘) 원년(1331) 8월 고다이고는 가사기 산(笠置山)(교토 부 소라쿠 군 가사기 초(京都府相楽郡笠置町))에서 머물며 버텼다(겐코의 변).19) 이 때 고다이고는 꿈 속에서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正成)의 존재를 알게 된다. 가사기로 부름을 받은 마사시게는 천황의 최종적인 승리를 예고하고 물러났다. 이윽고 가사기는 막부군의 공격에 의해 함락된다. 고다이고는 체포되었고, 같은해 10월 고곤(光厳) 천황20)이 막부의 지지를 얻어 황위를 계승한다. 고다이고 측으로 거병한 마사시게는 가와치 국(河内国) 아카사카(赤坂)(오사카 부 미나미카와치 군 치하야 아카사카 촌(大阪府南河内郡千早赤坂村))에 농성하면서 막부의 대군을 농락하지만, 군량이 부족하였으므로 스스로 성에 불을 놓고 모습을 감추었다. 겐코 2년 3월 고다이고는 오키(隠岐)로 유배되었다. 고곤 천황이 즉위하고 새로운 세상이 찾아왔는가 했지만, 교토와 가마쿠라에서는 여러 괴이한 일들이 보고되고 사람들은 불안에 빠진다. 가마쿠라에서는 호조 다카토키의 잔치자리에 덴구(天狗)21)가 나타나는 사건이 일어난다. 한편 고다이고 천황의 황자인 오토노미야 모리요시 친왕(大塔宮護良親王)은 기슈 구마노(紀州熊野)(와카야마 현 다나베 시 혼구 초(和歌山県田辺市本宮町) 주변)에서 요시노(吉野)(나라현 요시노 군 요시노 초(奈良県吉野郡吉野町))에 걸친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막부 타도 활동을 펼쳤다. 구스노키 마사시게도 재기를 꾀하여 천왕사(天王寺)(오사카 부 덴노지 구(天王寺区))26)에서 막부군을 물리친 후, 사천왕사(四天王寺)에 보관된 『쇼토쿠태자 미래기(聖德太子未來記)』를 펴 보고 승리를 확신한다. 이러한 움직임을 알아챈막부는 기나이(畿内)27)에 군사를 투입했다. 막부군은 아카사카 성, 요시노 성을 공격해 함락시키지만, 마사시게가 지키는 치하야(千早) 성(오사카 부 미나미카와치 군 치하야 아카사카 촌)에서는 갖가지 기발한 책략에 고전하면서 시간을 허송할 뿐이었다. 그 무렵 하리마(播磨)(효고 현(兵庫県) 남부)의 아카마츠 엔신(赤松円心)28)을 비롯한각지의 세력들이 막부 타도를 목표로 봉기한다. 고다이고도 오키에서 호키(伯耆)(돗토리 현(鳥取県) 서부)로 탈출하고, 나와 나가토시(名和長年)29)가 그를 맞이한다. 이윽고엔신・나가토시의 군세는 교토를 공략한다. 막부는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高氏)30)와 나고에 다카이에(名越高家)31)를 파견하지만, 겐코 3년(1333) 4월 다카우지는 단바 국시노무라(丹波国篠村)(교토 부 가메오카 시(京都府亀岡市))에서 반기를 든다. 다카우지 등 고다이고 측은 로쿠하라 단다이(六波羅探題)32)를 공격하였고, 이에 패한 호조 나카토키(北条仲時)33)는 오미 국 반바(近江国番場)(시가 현 고메하라 시(滋賀県米原市))까지 도주한 끝에 자결한다. 또 간토(関東)에서는 고즈케 국(上野国)(군마 현(群馬県))의 닛타 요시사다(新田義貞)34)가 막부로부터 등을 돌린다. 요시사다 군은 이내 대군이 되어 가마쿠라를 공략하였고, 5월 25일 다카토키를 위시한 호조 일문을 자결로 치닫는다. 6월에 고다이고는 도성으로 환궁했다. 각지의 막부 측 무사들도 투항하거나 자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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